■아이온, 새로운 희망 혹은 잃어버린 10년
수많은 FPS 게임과 블록버스터들의 무덤을 뒤로 한 채 맞이한 2008년 가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두 번째 확장팩 <리치왕의 분노>로 수성을 노리고 있고 엔씨소프트는 나온다는 말만 무성한 채 약 2년을 끌어 왔던 <아이온: 영원의 탑>을 공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기에 CJ인터넷의 <프리우스 온라인>까지 가세하여 2008년 가을은 여느 해보다 더 뜨겁고 더 치열한 경쟁을 앞두고 있었다. 후발 주자였던 <아이온>과 <프리우스>가 노린 것은 이른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기말’(확장팩 공개 이전에 게임 콘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엷어지는 시기)을 노리는 것이었고 그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먼저 칼을 뽑은 것은 <프리우스>였다. 10월 23일 공개 서비스를 실시하자마자 7만 명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하며 한 발 먼저 뛰어나간 <프리우스>는 <리니지>의 PC방 점유율까지 넘어서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기세를 위협했다. 감성 RPG라는 캐치프레이즈와 아니마 등을 이용한 게임 진행 방식은 기존에 흥행하던 MMORPG에서 보기 어려운 요소였기 때문에 <프리우스>는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개척하며 시장에 안착하는 듯 했다.

<아이온>은 확실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프리우스>보다 조금 늦게 공개된 <아이온>의 파괴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엔씨소프트가 밝힌 각오처럼 <리니지>와는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장기간의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통해 완성도를 높이며 출시되기 이전부터 데바 등의 회원 등급 시스템으로 아이온만을 위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노력까지 기울여 탄생시킨 <아이온>은 오픈 베타 테스트를 실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PC방 점유율에서 <프리우스>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물론 104주 연속 PC방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던 <서든 어택>까지 추월하며 PC방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약 2주 만의 전격 상용화로 인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이온>은 상용화 이후 동시접속자가 더 증가하며 최대 25만의 동시접속자를 기록하기에 이르렀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게 점유율에서 뒤지고 있었던 <리니지 1, 2>까지 일시적으로 점유율이 동반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의 대박 신화 이후 약 10년 만에 다시 대박 신화를 쓰게 되었다.

덕분에 <아이온>은 2009년 1분기에 426억의 매출을 기록하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흥행하는 MMORPG의 자리를 현재까지도 계속 지켜 나가고 있으며 <아이온>의 성공은 엔씨소프트가 ‘<리니지>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퀘스트 기반으로 설계된 국산 MMORPG가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이온>의 성공을 두고 개발사인 엔씨소프트를 비롯하여 적잖은 언론들이 ‘웰메이드 게임’ 시대를 논하며 <아이온>의 성공 이유가 웰메이드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냉정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고 보며 유감스럽게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반론의 여지가 많이 있다.

먼저 아이온의 성장 시스템 및 경제 시스템에 대해 되짚어보면 약 20레벨 정도까지의 초반 몰입감과 짜임새는 기존 유명 게임들의 시나리오나 퀘스트 짜임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이온>만의 재미가 더 훌륭하다고 느껴질 만큼 완성도가 높다.

그러나 20레벨을 넘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위화감이 느껴지는 동선과 이른바 노가다가 강조되는 성장 시스템, 그리고 <리니지 2>의 정령탄과 매우 흡사한 봉혼석은 <아이온>이 아니라 <리니지 2.5>를 만났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 만큼 골드 소모를 부추긴다.

결국 <리니지 2>처럼 또 돈을 바르라는 이야기와 대체 뭐가 다른가?

더욱이 <아이온>에서는 비행 전투가 필수적인데 30레벨을 넘어 오랜 비행을 위해 날개라도 사려면 기본적으로 100만 키나(아이온의 화폐단위)를 내야 한다. 1레벨부터 시작한 캐릭터가 <아이온>에서 장비 업그레이드와 스킬, 전문기술 등을 모두 잘 배우면서 퀘스트 진행 등의 정상적인 게임 진행을 해도 30레벨까지 100만 키나를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온>의 경제 시스템 역시 골드를 어떻게든 소모하게 만들고 골드를 통해 성장을 억제, 규제하려 하는 <리니지 2>의 경제 시스템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마족과 천족과의 대립을 유도하는 ‘어비스’와 ‘어비스의 요새전’ 역시 거대 레기온들의 점령사태와 종족전 결과 상위를 차지한 레기온 및 일부 이용자에게 보상의 대부분이 돌아가는 아이온의 시스템적 한계로 인해 RVR이 아닌 <리니지>의 공성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이 존재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여담이지만 이를 두고 어떤 게임 전문 사이트에서는 ‘<리니지>에서 겪었던 혈맹이라는 트라우마를 <아이온>이 짊어졌다’는 표현을 썼는데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9만 개나 잡았다는데 자동 사냥 신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쪼들리는 상황에 거대 레기온의 힘겨루기로 인해 세력이나 재력 둘 중에 하나는 가져야 하는 <아이온>에서 게이머들이 골드를 획득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게임 시스템의 취약점으로 인해 자동 사냥까지 만연하는 상황이다.

<아이온>의 자동 사냥은 과거 자동 사냥이 만연하던 <뮤>에 비길 정도로 그 상황이 심각하여 자동 사냥에 환멸감을 느낀 게이머들이 <아이온>을 가리켜 ‘오토온: 자동의 탑’이라고 비아냥거릴 정도가 되었다. 지금도 아이온에는 게시판 및 게임 안 신고를 통해 수백수천 건의 자동 사냥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

엔씨소프트 역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어 2009년 초부터 자동사냥 관련 사이트인 패왕 사이트의 폐쇄 및 9만 개 이상의 계정 정지 조치를 통해 자동 사냥 척결에 주력하고 있으나 큰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게임 전문 사이트 ‘인벤’에서 밝힌 <아이온>의 2009년 1분기 현금 거래 규모는 게임 매출액을 100억 이상 능가하는 533억 원으로 추산되었다. 9만 개 이상의 계정을 정지했음에도 자동 사냥 등으로 인해 획득된 잉여 재화의 현금화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엔씨소프트에서는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에 대해 ‘현금 거래를 줄이는 게임 시스템 변화도 중요하지만 편법적으로 게임머니와 아이템을 수집해 파는 작업장 근절이 우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이온>에 이어 MMORPG 부문 PC방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현금 거래 규모가 같은 기간 동안 불과 69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작업장 및 자동 사냥 근절만으로 <아이온>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게임 외적으로 보더라도 엔씨소프트가 과거 <리니지 1, 2>를 서비스할 때에 이런 문제를 방기하다시피 하여 자사 게임으로 인한 사회 문제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불법적 행동에 책임을 모두 떠넘기기 전에 이런 현상을 척결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처럼 <아이온>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높은 PC방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은 <아이온>이 개발사와 다수 언론의 주장처럼 웰메이드 게임이기보다는 높은 현금거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리니지 1,2>와 마찬가지로 ‘가장 돈 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온>은 새로운 희망이 아니라 <리니지>의 구태(舊態)에서 탈피하지 못한 우리나라 게임의 ‘잃어버린 10년’을 상징하는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온라인 게임에는 완성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아이온>과 그 뒤를 잇는 게임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이런 반론들을 해소해 나갈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결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온라인 게임들의 경쟁관계와 흥망성쇠, 그리고 빠르게 바뀌는 흐름을 정리하다 보니 햇수로 약 15~16년 정도에 걸쳐 일어난 일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400~500년 정도 분량의 역사를 경험한 듯한 박진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온라인 게임이 짧은 기간 동안 양적, 질적 성장을 거두며 문자에서 그림으로, 그림에서 가상 세계로, 그리고 이제는 문화의 영역으로 진입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이 문화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직도 과제가 남아 있다. 공부나 생활에 백해무익하다는 식의 무분별한 배척은 논외로 친다 해도 좋은 시나리오와 유기적인 짜임새를 갖추기보다 지나칠 정도의 경쟁과 대립을 유도하는 우리나라 게임의 특성은 게임에 대한 열기를 빠르게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현금거래와 자동사냥 유통 등의 기생산업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게임회사와 게이머들은 그 부작용을 알면서도 그런 현상을 묵인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온라인 게임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강조되는 선입관을 해소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회사는 웰메이드 게임을 만들고 유지할 만한 능력과 자세가 필요하고 게이머들도 새로운 게임에 덮어놓고 레벨과 돈이라는 낡은 틀을 적용하기보다는 게임 자체를 좀 더 즐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들을 회사와 게이머, 그리고 사회가 서로 주고받으며 점점 좋은 부분을 발전시켜 더 크게 쌓아나가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일방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며 쌍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온라인 게임 문화도 그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