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건강 > 연대행사/건강교실 > [송지희의 부모力 특강] (3) 떼 쓰고 반항하는 아이와 '친구'된 비결

▲ 일러스트 배진성

“엄마. 지금 기분 좋아, 나빠?”

“왜 또 그래?”

“저… 친구네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민박집을 하시는데 이번 방학 때 친구들이랑 거기 가서 하루 자고 오고 싶은데….”

“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빠는 바빠서 휴가도 못 내는데 넌 공부는 안 하고 놀 생각만 하니? 안돼!”

엄마는 고1 소민이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날 밤, 소민이는 방문을 발로 쾅쾅 차는가 하면 냉장고 문을 부서져라 세게 닫고 방이 떠나갈 듯 음악 볼륨을 높이며 무언의 시위를 해댔다. 소민이 엄마는 저러다 말겠지 하며 무시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새벽 2시가 지나도 아이는 잠을 자기는커녕 계속 방과 거실을 오가며 온몸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아이의 욕구 먼저 들어주기

예전 같으면 아이의 불손한 행동에 “어디서 배운 행동이니? 너 죽고 싶어?” 하며 육두문자(?)를 날렸을 소민이 엄마는 아이의 행동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이가 반항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채워지지 않은 욕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욕구가 훼손되면 감정이 상한다. 그러니 아이의 요구에 담긴 욕구를 읽어주어야 관계가 나빠지지 않는다.’ 부모교육 시간에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 무조건적 야단에 앞서 아이의 욕구부터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소민이 엄마는 소민이와 마주 앉았다. 소민이의 표정은 엄마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같이 밤새고 싶은 것 엄마도 이해해. 엄마도 그때 그랬어.” 엄마의 말을 듣자 소민이의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근데 네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시골에 내려가서 외박하는 걸 허락하긴 힘들어. 그곳이 안전한지 확인할 수 없고 넌 아직 미성년자니까 외박은 안 돼. 네 요구를 못 들어줘서 미안해. 대신 스무 살이 되면 그땐 허락할게. 아까 엄마가 화 내서 속상했지?”

자신의 마음을 엄마에게 이해 받은 소민이는 대답했다. “알았어요…. 그럼 하루만 친구들이랑 근처 계곡에 가서 놀다 올래요. 그건 되죠?” 엄마는 소민이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었고 소민이는 친구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왔다.

친구들과 시골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소민이의 맘 속엔 ‘친구랑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욕구가 숨어 있었다. 엄마가 그 욕구를 읽고 공감해주면 아이는 자신의 요구가 전부 수용되지 않아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소민이의 경우 원하는 대로 밤을 새진 못했지만 친구와 하룻동안 재미있게 노는 것으로 욕구를 대체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부모에 대한 불만 없이 쉽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욕구 많은 건 건강하다는 신호

아이들은 부모에게 수시로 여러 가지를 요구한다. 들어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때론 들어주기 힘든 것도 있다.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고 해서 무조건 비판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면 아이는 부모의 말에 수긍하기보다는 불만과 원망을 쌓게 된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부모를 향해 분노하고 반항하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읽어주면 아이는 부모로부터 이해받는다고 느낀다. 안 되는 이유는 그 후에 설명해도 늦지 않다. 불만을 가질 순 있겠지만 적어도 부모를 적대시하는 일은 없다. 자신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결정이란 걸 이해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의 화수분이 아니다. 화수분이 돼서도 안 된다.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는 것은 건강하다는 신호이므로 충분히 공감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면 아이도 부모의 통제를 이해하고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자녀 조종권'을 과감히 포기하라

중2 종민이 엄마는 요즘 종민이와 부쩍 친해졌다. 엄마와 함께 있는 걸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던 종민이는 엄마가 자신의 입장을 공감하려고 노력하자 어느 틈엔가 먼저 다가와 엄마에게 말을 건네는 살가운 아들이 됐다. 얼마 전 종민이가 이번 여름방학 때 캠프에 참가하게 됐다. 출발 사흘 전, 숙소 배정표가 발표됐다. 종민이는 다른 지방에서 온 아이들과 한 방을 쓰는 걸로 돼 있었다. 종민이는 돌연 캠프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종민이 엄마는 잔소리부터 해댔을 것이다. “참가비 환불도 안 되는데 누구랑 같이 자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며 아이와 설전을 벌였을 게 뻔하다. 그러나 종민이 엄마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해줬다. 내성적인 종민이에게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과 보내야 할 사흘’은 무척 난감한 시간일 게 분명했다.

“종민아, 모르는 아이들과 같이 방을 쓰고 잠을 자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고 내키지 않겠니. 친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 훨씬 신이 날 텐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조금 더 생각해봐. 엄마 생각엔 이번 기회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구나.” 종민이 엄마는 이렇게 말한 후 결정권을 아들에게 넘겼다. 이튿날 종민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캠프에 갈래요. 처음 보는 애들이랑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종민이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된 데는 지레 앞서가며 자녀를 통제하고 조종하려고 하지 않은 엄마의 역할이 컸다. 종민이 엄마는 “아이와 마음으로 소통된다고 생각하니 요즘은 아이와 함께 있는 게 무척 편안하다”며 “별것 아닌 일로 아이와 씨름했던 예전을 떠올리면 무조건 내 뜻을 고집하며 아이를 끌고 가려고 했던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진짜 이해는 ‘상대 아래 서는 것’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아이가 늘 바르게 행동하길 원한다. 그런데 바른 행동은 바른 감정이 선행돼야 가능하다. 그 때문에 아이들이 거칠게 행동하거나 반항할 때 겉으로 나타난 행동만 바로잡으려 하면 부모 노릇은 무척 힘들어진다.

자녀와 소통이 안 되는가? 부모가 자기 입장에서 자기 말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녀와 마음이 잘 통하는 부모, 자녀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부모가 되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자. 자녀의 마음속에 들어가 자녀의 입장에서 귀를 기울이자. ‘이해한다’란 뜻의 영어 단어 ‘understand’엔 ‘나를 내려놓고 상대의 아래에 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본래 아이들은 온갖 욕구로 똘똘 뭉쳐 있다. 그러니 혹 아이들이 난감한 요구를 하더라도 무조건 묵살하지 말고 최대한 공감해 주자. 부모의 진심이 전해지면 아이들은 자신의 요구가 다 수용되지 않아도 결코 부모를 미워하지 않는다.

부모력 업그레이드 Tip
해달라는 것 많은 아이, 이렇게 해보세요!

자녀의 욕구는 무조건 수용하고 공감한다
욕구 통제는 감정을 상하게 하므로 이후 대응을 더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모든 요구를 충족시켜 주라는 건 아니다
자녀의 요구는 자녀의 눈높이에 맞춰 적절하게 통제한다.
이때 부모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

요구를 통제할 때는 반드시 대안을 제시한다
적절한 대안 제시는 부모에 대한 자녀의 원망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적이다.

/ 송지희 부모교육 전문가·‘명품자녀로 키우는 부모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