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공부] 우울한 아이들 이렇게 도

와주세요 [중앙일보]

안아주고, 터놓고 이야기하고, 햇빛 쬐며 함께 운동

하고

그래픽 크게보기
한국 청소년 사망 원인 중 1위는 교통사고이고, 2위는 자살이다. 청소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동기는 주로 성적·진학 문제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이란 마음의 병은 자살과 깊은 연관이 있다. 자살자의 60~80%가 우울증과 관련돼 있다는 외국 통계가 있을 정도다. 우울증은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꽉 갇혀 있는 상태에서 사방이 점점 조여오는 것으로 느껴지는 상태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우울증은 성인의 우울증과 다른 양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울증에 빠진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까.

청소년 우울증=가면우울증

이모(13·중1)군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경쟁을 이기지 못해 성적이 급락했다. 학업 스트레스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맞벌이 부부인 부모에게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불평을 쏟아내기 일쑤.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에게만 강한 애착을 보인다. 친한 친구도 없어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에 비해 최모(17·고2)양은 음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신장 1m62㎝에 몸무게 42kg, 마른 체형이지만 “먹으면 바로 살이 찔 것 같아 두렵다”고 한다. 식사 시간에는 혼자 방에 들어가 누워 있고, 배가 고프면 물이나 음료수로 끼니를 대신한다.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 생활에도 흥미를 잃었다.

서울시 소아청소년 정신보건센터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이군과 최양 같은 사연이 접수된다. 보통 성인들은 우울증이라고 하면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고, 무능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우울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경우를 떠올린다. 아이가 난폭해지거나 등교하기를 꺼리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면 “사춘기니까” “학교에 안 좋은 일이 있나 보지”라며 한때의 방황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과 전문의 이원익(44) 박사는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우울은 성인의 우울증과는 증세에서 차이를 보인다”며 “우울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산만함과 난폭함·짜증·반항 등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모와의 대화가 없어지고, 성적이 떨어지거나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의 증세를 보인다. 심한 경우에는 술과 담배에 손을 대거나 게임중독·거식증과 폭식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고 아이의 행동이 비행인지, 우울증 증세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년의 우울증을 이른바 ‘가면우울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정에서 어떻게 돕나

정신과 전문의 정찬호(43) 박사는 청소년 우울증의 주요 원인을 성적 스트레스와 가정 불화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울증 극복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앞장서 가정에서의 대화법을 바꾸고, 놀이를 통해 아이들로 하여금 ‘관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①솔직한 글쓰기=아이에게 자신의 기분을 마음대로 적어보게 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죽고 싶다” “기분이 나쁘다” “짜증난다” 등 솔직한 심정을 적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

②다리운동=1990년 미국의학회에서 인정된 우울증 자가치료법 중 하나. 자전거 타기나 러닝머신·등산 등 다리운동을 하면 허벅지에 있는 구심성 신경이 뇌를 자극시켜 뇌 활성화 작용에 효과가 있다.

③대화법 바꾸기=아이가 짜증을 낼 때 “너 왜 자꾸 짜증내?”라고 핀잔을 준다면 일단 대화는 단절된다. “짜증을 부리는 이유가 뭐니”라며 아이의 의사를 물으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점차 열어 간다.

④광선요법=아이들과 함께 야외활동을 하며 햇볕을 쏘이는 방법이다. 실제 의학계에서는 100럭스(lux)의 광선상자를 이용해 하루 30분씩 빛을 쏘이게 한다. 외부 활동을 통해 햇볕을 받으면 뇌에서 세로토닌 성분이 분비돼 우울감을 줄여준다.

⑤스트레스 방출=아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펀치볼이나 샌드백 등의 물건을 때리면서 내재된 악감정을 풀면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⑥포옹=부모의 사랑을 전하는 데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스킨십이 효과적이다. 포옹을 통해 상호 교감을 할 수 있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학교·교사는 어떻게 돕나

청소년은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학교에서 보낸다. 2007년 서울시 자살예방센터가 조사한 ‘10대 청소년 자살현황’에 따르면 친구와의 불화와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자살한 청소년 비율이 6%에 달했다.

정신과 전문의 최혜원(44·여) 박사는 “교우관계가 좋지 않거나 집단 따돌림을 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은 충동심이 강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며 “아이가 이상증세를 보인다면 상담교사와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게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①교사가 인식을 바꿔라=우울증은 당뇨병과 같다. 당뇨병 환자가 의지력으로 당을 조절할 수 없듯이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최 박사는 “상당수 교사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학생을 의지력이 약한 아이라고 판단해 ‘정신 차려’ ‘강해져야 한다’는 식으로 다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울한 감정은 의지나 정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야단치기 전에 ‘요즘 가장 힘든 점이 뭐니?’ ‘선생님이 어떤 부분을 도와줄까?’ 식의 지지 반응이 우울증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②단도직입적인 질문=우울증세가 심각해지면 스스로를 향한 자책과 자기비하가 심해진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학생에게는 오히려 “너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니?”라는 자극적 질문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살에 관한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다시 한번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립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고 있다는 위안은 우울증을 해결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우리 아이의 우울 척도는?



그래픽 크게보기

기숙사 우울증
동아리 활동, 옆방 친구 만들기…‘노는 방법’을 찾아라

기숙사 어느 방이나 밝은 빛이 들어오는 창이 있다. 하지만 바깥바람이 들어올 수 있는 ‘열린 창’은 크지 않다. 게다가 다 열어도 겨우 머리 하나 들어갈 정도로 좁다. 국내외 기숙사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작고 좁은 창’… 그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남들은 부러워한다. 수재들만 다닌다는 좋은 대학에, 좋은 시설의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지금의 생활은 행복할까. A씨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도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대학 기숙사는 뭔가 다를 줄 알았죠. 하지만 이곳에서도 다들 공부만 하네요. 소설책 한 권 보기도 민망하고, 노는 얘기를 하면 이상하게 보니까 적응이 안 돼요. 왜 이러고 사나 싶다가도 불안해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저를 보네요. 우울해요.”

이처럼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 가운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가끔 뉴스를 통해 그들의 ‘극단적 사고’ 소식을 듣기도 한다. ‘기숙사 우울증’, 벗어날 수 없을까.

▶잠이 안 온다면=대학 1학년 B군은 잠을 자다 몇 번씩 깬다. 벌써 석 달째다. 잠을 푹 자지 못해 낮에는 멍하니 있기 일쑤. “잠귀가 밝아 룸메이트가 뒤척이는 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진다”며 “기숙사에 온 후 항상 뭔가에 쫓기고 불안하다”고 고백했다. C양은 아침 수업을 자주 놓친다. 룸메이트가 공부를 한다며 밤늦게까지 불을 켜둬 새벽이 돼야 깊은 잠이 든다. 누구 하나 깨워주지 않으니 늦잠을 잘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다.

기숙사에 처음 입소하면 ‘불면증’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다. 집에서 사용했던 침대보다 좁고, 무엇보다 혼자 생활을 해오다 둘 혹은 그 이상과 잠을 자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자고 나도 목이나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는 무겁다. 신홍범(수면전문의) 의학박사는 “불면 자체에 대한 공포가 정신적으로 긴장하게 하고, 그 결과 쉽게 잠이 들지 않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면증을 방치하면 만성화돼 우울증·불안증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며 “우선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부터 시도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외로움을 느낀다면=기숙사 2인실을 쓰는 D양은 룸메이트가 자주 외박을 해 기숙사 방에 혼자 남겨질 때가 많다. “수업이 없는 날엔 동기들이 학교에 안 와 기숙사에만 있기도 한다”며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는 날도 있어 집 생각이 굴뚝같다”고 털어놨다. 혼자 있거나 외로움을 탈 때는 우선 우울해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명이 함께 있는 도서관에 가 공부를 하는 것도 한 방법. 또 마음에 드는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고 그 속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국 과학 수재들이 모인다는 KAIST는 학교 기숙사에서 8000명 정도가 생활한다. 70% 정도가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입학하다 보니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대학 이주현 홍보팀장은 “기숙사를 통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우선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학교 내 동아리 수는 65개 정도. 한 명이 2개 이상의 동아리에서 활동하도록 학교에서 권장한다. 동아리에서 친구도 사귀고, 바쁘게 생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 팀장은 “KAIST는 2월에 학기가 시작돼 5월에 끝나는데, 6월부터 3개월 동안은 외국에 가든 인턴을 하든 기숙사 밖으로 나가게 유도한다”고 말했다.

▶우울해진다면=재수를 해 대학에 입학한 E군은 가슴이 답답해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그는 “원하던 대학을 가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고 지방 기숙사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기분”이라며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송형석(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는 기숙사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우울한 것은 아니라며 “환경 탓이 아니라 즐길 줄 아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기숙사에서 방학 때 뭘 할지를 상상해본다. 계획을 세우고 조금씩 실천을 하다 보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기숙사에 있을 때 없던 불안과 우울이 생긴다면 주말에는 반드시 집에 갈 것을 권했다.

외로운 공간에서 재미를 찾는다는 게 사실 쉽지 않다. 이럴 땐 반드시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 서울대는 지난해 학생들의 자살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응급상담전화 ‘스누콜’을 운영하고 있다. 상담원들이 하루 24시간 응답하고, 공휴일에도 전화착신을 통해 상담이 이뤄진다.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 학생상담센터 김지은 전문위원은 “지난해 3월 시작된 뒤 자살 시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기숙사생은 물론 졸업생, 고시생의 상담도 있다”고 말했다.

기숙사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우울한 것은 아니다. 공부량이 많은 고등학교 기숙사의 경우 ‘우울할 틈이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얘기. 서울대 김 위원은 “기숙사라고 해서 특별히 더 외로운 건 없다”며 “오히려 옆방 친구들과 사귀기엔 더 쉽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박사 역시 기숙사가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부모로부터 지나친 간섭을 받던 학생들은 오히려 기숙사에서 자기 나름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