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습니다' 식의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어제부터 '종이컵 납품업체, 제지협회(?), 종이협회(?)'의 전화를 수없이 받았고

기사 엠바고가 풀리는 밤 12시에 모 카페 홍보팀의 자료를 달라는 문자를 받았지요.

이해관계가 달렸는데 이 또한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중소 종이컵 납품 업체는 얼마나 때려 맞을까, 밤에도 수습하니라 담당자는 계속 일하구나,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구나,

뭐가 되었던 간에, 남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워낙 검출량이 미량이기도 하고 폴리에틸렌 코팅에는 프탈레이트처럼 과불화 화합물도 안 쓰인다고 들었기에

종이컵 환경호르몬 (과불화 화합물) 검출시험 결과가 나온 다음에도 근 반년간 자료만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에게 여쭤보았더니 그래도 이런 자료는 사람들이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셔서 공개하게 되었지요.

발단은 어느 날 본 종이컵 사진이었습니다.

'아니, 이건 뭐지? 굿바이 환경호르몬?? 종이컵에 환경호르몬이 들어갔었나?

2011년 쯤 '소비자 고발'에서 종이컵에서 프탈레이트도 안 나오고

폴리에틸렌(PE) 코팅은 물 끊는 온도인 100도 이하에서는 안 녹으니까 괜찮다고 했는데?'

라는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그럭다 우연히 간 곳의 종이컵에 "저희 컵에는 PFOA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써진 것을 보았습니다.

응? 컵에 과불화 화합물이 쓰이는 건감? 하고 급 궁금해졌지요.

(PFOA는 과불화 화합물의 대표적인 종류입니다.)

'뭐, 안 나올 거 같긴 한데 이상하다, 어떤 종이컵에도 안 들어가면 왜 이런 문구를 써 놓는 것일까'가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보도된 바대로 몇몇 커피 전문점 종이컵에서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되었습니다.

'왜 어떤 컵에서는 나오고 어떤 컵에서는 안 나왔을까요.

것도 하필이면 환경 실천 나름 열심히 하고 텀블러 가져가면 300원이나 할인해주는 업체에서 말이에요!'

하고 설마, 하던 조사결과에 질문을 해 대니

분석을 맡아주신 교수님께서 "그런 것은 제조업체에 알아보셔야 할 듯 합니다"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식약청에서 온 전화에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런 건 제조업체에 여쭤보셔야지 왜 나왔냐고,

폴리에틸렌 코팅에는 안 나올텐데 원인이 뭐냐고 저희에게 문의하시면 어떻게 해요!"

별 뜻 없이 궁금해서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하루 종일 사할이 달린 업체들의

적대적이고 실망하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한탄하는 전화를 받고 있자니

식약청의 "원인도 모르면서 조사를 했답니까"는 식의 발언에 그렇게 반응하고 말았습니다.

말 그대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 입니다.

그저 분석결과가 유갑스럽게도 그렇게 나왔을 뿐입니다.

사실 종이컵에서 검출된 유해물질의 양은 초미량입니다.

인체 내 평균 과불화 화합물의 양으로 따져보면 종이컵으로 인한 노출은 별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인체가 과불화 화합물에 노출되는 주요 경로는 절대! 종이컵이 아니고

그래서 업체나 당국은 별것도 아닌데 시민의 건강 염려증에 불 지르고 괜시리 마음만 불안하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태아나 노약자, 화학물질 과민증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지요.

그리고 일평생 테이크 아웃 한 번 해 본 적 없을 북극곰이나 짧은코 돌고래나 러시아 캐스피안 물개는 무슨 죄입니까.

그들의 피에서도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됩니다.

재활용률 14%,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종이컵의 성분이 북극으로도, 플로리다 해안으로도 흘러가기 때문이죠.

공교롭게도 오늘은 식목일입니다.

국내에서 일회용 종이컵은 한 해 120억개 이상 소비되는데 이를 위해 약 8만톤에 천연펄프를 수입합니다.

50 cm 이상 자란 나무 1500만 그루의 목숨 분량인 셈입니다.

건강하십니까? 그렇다면 유해물질이 나온 업체를 탓하거나 항의 전화를 하시거나 분노하시기보다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목숨값이 바로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컵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내수 경제를 진작시킨다고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사라졌다는 것,

이미 우리 삶이 유해하거나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로 점철되어 있어서 그것을 되돌리려면 누군가가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것,

그게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환경을 파괴하는 댓가로 조금의 불편함도 감수하지 않게 된, 우리 삶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 본 글은 여성환경 연대의 글을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