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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어느 나무 아래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교사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학생인 줄 모르는 몇몇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사이에 오간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 사람 앞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이들에게도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바라던 공간이 세워져 최초의 학교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건립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최초의 학교는 우리 내부에 있는 즉, 우리들 바람에 내재하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동의입니다.”(256-257쪽)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침묵과 빛의 건축가’, ‘위대한 건축의 교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루이스 칸”이 학교의 기원과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김경인, 중앙북스)에 나오는 말이다. 저자는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책 표지에 있는 사진은 부산 신선초등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책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이 학교뿐만 아니라 경복여자고등학교의 도서관 사진 정경도 너무 좋았다. '새로운 학교'를 꿈꾸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고 한 방 맞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저자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보통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에 이르기까지 총 12년의 시간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머물게 된다. 학교는 아이들이 감성적으로 가장 예민하고 정서적으로 중요한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하루 24시간 중 평균 10시간 이상을 지내는 곳이다. 여기에서 사회화가 시작될 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 주요한 가치관이 형성되며 창의력과 상상력이 키워진다. 또한 학교는 인격을 완성시켜나가는 절대 공간으로, 지식을 쌓고 지혜를 공유하는 성장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경험하는가’이다. ‘무엇을 배우는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존감을 갖춘 하나의 인격체로서 아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크기 위해서는 학교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개성을 꽃피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줘야 한다.”(13쪽)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입시’라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나라의 교육 현실은 절망적이다.” 학교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일 뿐이다.

“학교가 규격화된 성냥갑처럼 지어지던 근대 시기, 교육의 목표는 실상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길들여 표준화시키는 것’이었다. 근대 국가는 교육과 법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운영했다.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이 바로, 학교, 군대, 그리고 감옥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는 공간을 구분하고 규율을 강제하는 학교는 군대나 감옥과 같이 피감시자와 감시자 사이에 ‘권력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였다. (…) 그간 학생들은 죄수처럼 온갖 감시와 통제 속에서 규율에 길들여지고 순응하게 만드는 교육을 받았다. (…) 그 결과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선생님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실’에 이르게 되었다.”(21-22쪽)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이리 옮기거나 저리 옮기도록 일일이 일을 지시하거나 일감을 배분하지 마라.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어린 왕자』로 친숙한 프랑스 작가인 생텍쥐베리가 남긴 이 말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의 방향을 잘 말해주고 있다.”(22쪽)

“왜 모든 학교 건물과 교실은 똑같이 네모 모양일까? 사실 자연에는 완벽한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이나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곡선에서 시작된다. 한번 생각해보라. 산, 나무, 강, 바위, 길, 인간의 몸 등 자연에는 직선보다 곡선이 많다. 일자 모양으로 선 나무가 직선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 역시 자세히 보면 튀어나오는 부분이 있어 직선이 아닌 것이다. 그에 반해 직선은 인공이다. 직선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산업화 시대의 중요한 요소이다. 고속 이동을 위해 만든 직선 도로, 직사각형의 아파트와 건물,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없애고 갯벌을 메워 만든 네모반듯한 간척지, 강의 인공 제방과 운하까지 현대 사회는 직선의 세계로 이뤄져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콘크리트 직선으로 둘러싸인 차갑고 딱딱한 공간들이 아이들의 긴장과 불안을 유발시킨다.”(41-42쪽)

우리가 다녔던 학교는 효율적인 감시를 위해 설계된 일자형 복도였다. “긴 직선의 복도는 단순히 교실과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일 뿐 아이들이 오가며 쉴 수 있는 의자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 “상상력을 한창 꽃피워야 할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학교’라는 이름의 네모반듯한 감옥 안에서 입시 기계로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삶의 획일화, 소통의 단절, 학업 스트레스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47쪽)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북유럽 아이들의 교육 경쟁력은 학교 공간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관언이 아니다. ‘학교가 집보다 더 편하고 좋다’는 그곳 아이들은 학교를 배움의 장소이자 놀이의 장소로 생각한단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공간 디자인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43쪽)

“집이 ‘잠만 자는 공간’으로 존재하는 가정은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떨어져 가족 해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듯이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공간’으로 존재한다면 경쟁과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수밖에 없다. 지덕체를 고르게 길러주는 학교다운 본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 공간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교육 개혁은 반쪽짜리 개혁에 불과하다. 공간이 바뀌어야 우리 아이들도 변한다.”(57-60쪽)

“학교 건물이 가르친다School Building as a Teacher.”라는 이탈리아 건축가 조르지오 폰티의 말처럼 잘 디자인된 건축은 그 자체가 교육이 된다. 배움의 공간을 잘 꾸미는 일은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을 운용하는 능력과 체험의 지혜를 몸으로 배울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예컨대 ‘좋은 학교’란 겉보기에만 예쁜 건물이 아니라 지속성과 공공성, 역사성을 띠면서 학업과 인성을 기르기에 적절한 학교를 뜻하는 것이다.”(64-65쪽)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자율성과 창의성, 상상력, 서로에 대한 배려를 기룰 수 있게 학교를 디자인해야 한다. 학교 디자인은 하나의 ‘작은 사회’를 디자인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을 둘러싼 기존 환경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각 공간에 적용 가능한 디자인 철학을 고심하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험을 잘 치는 요령이 아닌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술이지 않겠는가.”(68쪽)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 1만 1천여 곳의 초·중·고등학교를 문화적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을 민간 주도로 추진하기 위해 2008년 1월 14일에 사단법인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설립을 인가했다. 설립 목적은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과 창의력 증진, 학습 효과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유휴 공간을 개선하고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는 데 있다. http://www.happy-school.or.kr ”(77쪽)

“사실 그간 화장실이 학생들의 탈선 장소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지만, 그곳을 밝고 환한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키면 얼마든지 학생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학생들은 변화된 공간에 맞게 행동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사실 화장실은 개인적 욕구뿐만 아니라 사회적 욕구까지도 은밀하게 발산할 수 있는 지극히 자유로운 공간이다. (…) 대왕 중학교는 화장실 개선 후, 중학교 학업성취도에서도 전국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학업적으로 긍정적인 성과를 남겼다. 변화는 이 뿐만이 아니다. ‘공간이 아이들을 바꾼다.’는 사실을 깨들은 학교 측은 도서관, 음악실, 로비, 강당, 복도 등 교내 다른 공간들도…”(117-118쪽)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호 괴테는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면 날마다 몇 가지 일을 습관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훌륭한 그림을 보고, 좋은 말을 나눠야 한다고 말이다.”(137쪽)

옥상 공간이 작은 정원으로 탈바꿈한 “한국도예고등학교 학생들은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옥상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꽃을 보면서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없듯이 사용하는 언어는 순화되고, 친구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함께 공유하면서 서로 더 가까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친구와 다투더라도 옥상에 가면 금세 화해하게 된다고 말하며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덕분에 학생부의 일이 완전히 줄었죠.’”(163쪽)

“‘정원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마지막 완성이 될 것이다.’라고 한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은 삶의 성찰들의 완성이며, 최고의 삶의 가치이다.”(166쪽)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도서관이라고 하면 정 자세로 앉아 조용하게 책을 읽으며, 학습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누워서 책을 보는 학생이 있다면 분명 똑바로 앉으라고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하다. 그런데 이곳(부산 신선초등학교)은 정반대이다. 학생들이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재잘재잘 떠들어도 야단치거나 뭐라 하는 선생님이 없다. 오히려 도서관에서만큼은 얼마든지 편하게 있다가 가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게 하려면, 먼저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그동안 생활 속에서 독서가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서일 경우가 많다.”(177쪽)

“언젠가 책에서 그런 구절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감동을 받는 순간 뇌에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큰 감동을 경험했던 사람일수록 어려운 순간에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높아진다고 말이다. 감동이 가져오는 변화는 그만큼 힘이 세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감동 없는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이들은 사회가 정한 틀 안에서는 그럭저럭 맞춰 살아갈 수 있겠지만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와 행복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긴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자기 경험과 기억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간이 만들어준다고 나는 믿는다.”(193쪽)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빌 게이츠,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발명왕 에디슨,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 시대를 앞당긴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역시 유대인이다.”(223쪽)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도서관인 ‘예시바Yeshivah'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예시바의 책상은 둘 이상이 서로 마주 보도록 놓여 있어, 혼자 공부할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혼자 조용히 공부하는 것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책상 위에 책을 쌓아놓고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고 논쟁하며 배움을 확장시켜나간다. 그로 인해 예시바는 언제나 활기차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이다.”(224-225쪽)

“창의력을 발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소통’이다. 그리고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공간’이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논쟁을 통해 소통하는 유대인들의 도서관인 ‘예시바’의 경우를 봐도 그러하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명문대로 손꼽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곳곳에 티룸(차를 마시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이곳에서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228쪽)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채색의 회색빛 공간에 ‘색’을 선물하는 일이었다. 창의력과 감수성을 한창 키워야 할 10대 시절에 회색빛 네모난 공간에만 갇혀 사는 아이들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밝고 산뜻한 공간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복도나 교실, 문화 공간의 페인트 생각을 화사하고 경쾌한 색으로 바꿨다. 환한 조명, 형형색색의 그래픽, 탁 트인 통유리창, 알록달록한 모자이크 타일, 강렬한 차양막 등 공간의 구석구석마다 개성을 덧입혔다. 학교가 환해지니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덩달아 웃음도 많아지고 학업 능률도 개선되었다.” (237쪽)

“‘아이들은 모두 천재로 태어난다’라는 피카소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었다. 세상에 평범한 아이는 하나도 없다. 다만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타고난 재주를 싹 틔우기도 전에 부주의한 어른들에 의해 짓밟혀버릴 뿐이다. 모든 아이들은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태어나므로 이를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저마다의 개성을 인정해주면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넘쳐나게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이번 작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251-252쪽)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무릎을 쳤다. 그래서 디자인이 중요한 것이다. 과연 학교뿐일까? 창의적인 일을 하는 출판사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잠만 자고 와서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이 공간의 가치를 향상시킨 사무실에서 일하게 만들고 있기나 한가? 나부터가 많이 반성되었다. 그리고 문득 한 출판사 사무실이 떠올랐다. 뒷사람이 앞사람의 뒷머리를 보고 일렬로 앉아 있는 줄이 여러 개인 회사, 사장은 맨 오른쪽 뒷자리에 앉아있던 방직공장 같던 사무실. 그 출판사 사장은 한때 1년에 1000권씩 책을 펴내겠다는 웅대한 야심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사장부터가 이 책을 꼭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