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은 9월 16일 오전 11시,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관 앞에서 ‘화학물질 안전관리 발목잡는 전경련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전경련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항의문을 전경련에 전달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구미불산사고, 삼성불산사고 등은 지난 2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화학물질 사고입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사망자만 127명에 이르는 끔찍한 사건입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생활용품 그리고 우리가 매일매일 쓰는 물건에서 폐를 석고처럼 굳게 만든다는 화학물질이 나온다면 그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제품을 만든 기업에 있는 것일까요? 또 아니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외면한 정부에 있는 것일까요?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만들고 팔아온 20여 개의 기업들은 정부의 공식발표에도 불구하고 사과와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망자를 비롯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대형로펌을 앞세워 장기 소송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의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최근 제정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개정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은 가습기살균제사고, 구미와 삼성 등 연이은 불산 사고를 경험하면서 실질적인 화학물질안전관리의 필요성으로 법이 재개정되었습니다. 특히 유럽의 선진적인 화학물질안전관리제도(EU REACH)가 참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은 국내 소비자와 사용자를 위한 화학물질 안전관리가 아닌 유럽 수출길이 막히는 것을 우려한 대응 차원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위해성정보 확보대상물질이 당초 가습기 사용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요구보다 느슨하게 적용돼 있고 취지보다 훨씬 더 후퇴된 내용입니다.

전경련, 화평법은 ‘기업의 경쟁력 약화 초래할 것’

지난 12일 전경련 회장단은 발표문을 통해 “최근 논의되고 있는 화평법은 기업 현실에 맞지 않고,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가 부지한 상황에서 이런 규제들이 외국 투자 기피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전경련은 화학사고 예방은 외면한 채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다’, ‘미국,EU,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엄중한 규제’라는 등의 이유를 들면서 뒤늦게 화평법과 화관법을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모든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제정된 게 화평법이다. 화학물질안전관리 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담겨있는데 전경련이 뒤흔들고 있다”며 “대한민국 기업을 대표하는 곳으로서 127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느냐.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전경련 회원사들의 제품이지 않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만들고 팔아온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애경, SK케미칼, GS리테일 등의 가해기업들은 전경련의 회원사이기도 합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원인이 해당 기업의 가습기살균제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발생한 2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일언반구 사과 한마디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전경련의 역할은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익집단인 동시에 소비자인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해야 할 기관입니다. 그러나 전경련은 기업경쟁력 약화라는 명분으로 사회적 역할을 방기한 채, 이익집단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전경련 자체적으로 화학물질 안전관리 체계를 강화하여 기업들이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권고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전경련의 역할이자 전경련이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행동은 수백명의 억울한 희생자 앞에 사죄하는 것입니다. 또한 화평법과 화관법 등 제한적인 소비자와 사용자의 안전을 담보한 법을 흔들기에 앞서  ‘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불산 누출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국민앞에 ‘전경련 가입 기업의 화학물질안전관리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 글 : 정미란 (환경연합 정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