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행정법원이 온라인 게임에 대한 아이템과 게임머니 등 게임 내 재화에 대해 실물 자산의 가치가 있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한동안 잠잠했던 게임 내 재화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온라인게임에 이용되는 골드나 사이버 머니 자체가 현실적으로도 재산가치가 있는 것임을 공표하는 첫 번째 판결인데다가, 대규모로 게임 머니 및 아이템 거래를 하는 ‘작업장 운영’거래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근거가 마련되는 한편 게임 머니 법제화에 대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굉장히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게임 내 자산에 대한 재화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던 게임업계의 게임사들의 입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판례이기 때문에 그 후폭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9월 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문모(42)씨와 전모(42)씨가 서울 강동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부가가치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 게임아이템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점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원고가 게임머니를 유상으로 매수한 뒤 이윤을 남기고 매도한 만큼 게임머니는 엄연히 재산가치가 있는 거래의 객체"라며 "온라인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내지 기타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재화에 해당해 부가가치세법상 세율 10%를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부가세법에 따르면 재화에는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체물뿐 아니라 동력·열 및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 및 권리 등으로 무체물도 포함된다"며 "부가세법에서 재화와 용역의 공급 대가가 4천800만원 미만인 개인사업자를 간이과세자로 규정하고 2％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지만 원고는 간이과세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씨 등은 2003년 11월 강동구에서 I사를 설립한 뒤 사이버머니를 매수했다가 다른 이용자에게 판매하는 거래를 해왔고 과세표준을 4천629만원이라고 산정, 간이과세자로서 2％ 세율을 적용한 부가세를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한 바 있다.

그러나 강동세무서는 원고가 판매한 게임머니 공급가액의 합계인 46억2천여만 원을 과세표준으로 보고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부가세 경정 고지를 한 것이었다. 행정법원이 게임머니는 실질적인 자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결한 최초의 사례가 되는 순간이었다.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게임 아이템 및 머니 거래 시장에 세금이 부과된 것은 지난 2007년 7월 1일부터다. 당시 국세청이 인터넷 통신판매를 통해 얻은 이익에 대해 세금부과를 명문화한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이 발효된 것이었다. 이 개정안은 반기 기준 1천 200만원 이상의 게임 아이템을 판매하는 사업자는 의무적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매출 징수 대상 사업자 중 연 매출 4천800만원 이상인 일반과세자의 경우 판매액의 10%를 세금으로 내야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 대해 부가가치 처분 취소소송을 낸 문 씨 등은, 게임머니가 재산적인 가치가 없는 단순한 컴퓨터 코드에 해당하는 만큼 부가세법상 재화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냈다. 문 씨 등은 소위 말하는 온라인 게임 ‘작업장’을 운영하는 직업형 게임 유저들이다.

△ 법원의 이번 판결은,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 게임머니 거래에 대한 ‘직업성의 인정’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게임머니가 재화의 가치를 지님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로 인해 게임 머니 거래를 사실상 업으로 삼는 이들에 대한 조세 근거가 마련됐으며, 상위 법원이 동일한 취지의 판결을 내릴 경우 명확한 판례가 생기게 된다.

문제는 이런 법원의 판결이 그 동안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 왔던 게임머니와 아이템에 대한 재화 인정을 너무나 간단하게 해 버렸다는 것에 있다. 게임업계 내부적으로 게임머니와 아이템을 실질 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입장이 여전히 팽팽해 그 접합점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법원이 사행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작업장을 공식적인 사업장으로 인정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게임 머니와 아이템이 실질 자산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여전히 게임사들은 약관을 통해 거래를 금지하는 것으로 자산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게임머니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보드게임을 운영하고 있는 게임포털 사업자들의 경우 아이템 중개 거래사이트를 통해 게임머니를 유통시키는 것을 아예 금지시키고 있을 만큼 예민한 문제로 계속해서 논란거리가 되어 왔다.

게임사들이 ‘표면적으로나마’게임머니와 아이템에 대한 재화 인정을 해 오지 않은 이유는 바로 사행성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겜블을 소재로 한 게임머니의 경우 유통을 금지하고 있는 현재에도 다른 편법으로 유통이 되면서 도박과 다를 것이 없다는 지적을 받으며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지적을 받아 왔으며, 온라인 게임 아이템들과 게임머니 역시 승용차 한 대 값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거래가 되는 현실에서 게임의 역기능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게임아이템과 게임머니의 현금거래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 지난 6월 중국 게임업계는 자국 내에서 온라인 게임 현금거래를 법적으로 금지시켰으며,
이에 따라 중국 내의 수많은 작업장에서 생산되는 사이버 머니들이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적하기도 했다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법원의 판결이 너무 가벼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게임산업진흥법이 게임의 결과가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해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고스톱과 포커 등 사이버머니를 아바타에 끼워 파는 간접충전 모델을 금지시키는 조항을 입법시키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머니를 판매하는 사업장에 대한 세금이 정당하다는 것을 판결한 것은 너무나 단편적인 처사라는 것이다. 만약 상위 법원이 이번 판결과 비슷한, 혹은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릴 경우에는 게임머니가 실물 자산으로 가치를 완전히 인정받게 되며 웹보드게임의 사행성 및 사업모델과 관련한 논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또한 최근 온라인게임 이용자가 한 달에 살 수 있는 게임아이템 월 결제한도인 아이템 이용한도 규제가 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어 게임아이템을 둘러싼 논란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난 6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최근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업계와 게임산업 정책과 관련한 워킹그룹을 구성, 아이템 이용한도 규제를 비롯한 업계 현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알려졌다. 아이템 이용한도 규제는 웹보드게임과 일반 온라인게임 공히 이용자당 월 30만원으로 아이템 결제액을 제한하고 있는 기준으로, 협회는 일반 온라인게임에 대해서는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 불법 프로그램 등을 사용한 게임아이템, 게임머니 생산도 끊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분들을 온라인 게임의 역기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경우 기존에는 월 30만원이 넘는 게임 아이템을 포함하고 있는 게임은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등급 분류 심의를 통과할 수 없었으나, 향후에는 이를 훨씬 넘는 고가의 아이템이 판매될 수 있을 전망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는 게임의 과도한 사행화와 이용자 민원 등을 우려해 이 같은 기준을 내부적으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협회가 이의 철폐 내지 완화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면서 최근들어 입장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열린 워킹그룹에서는 업계 대표들이 기존에 비해 대폭 상향 조정된 결제한도 안을 다수 제시했으며, 정부 측은 이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하는 등 사실상 완화 쪽으로 방향이 잡힌 모양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최근 "성인의 경우 결제액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하며 법으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정부가 개입하는 것보다는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학부모단체 등 사회 일각에서는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아이건강국민연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월 결제한도를 조정하는 것은 게임회사가 돈벌이를 위해 사행성 짙은 게임요소를 넣는 데 정부가 지원하는 격"이라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물등급위원회 등을 비판했다.

△ 고가의 온라인 게임아이템을 판매하는 것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이 단체는 또 "현행 30만원은 성인에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라며 "과도한 금액 지출을 막기 위한 선언적인 의미가 있는 조항을 완화하는 것은 사행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키우는 등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업계 일각에서는 성인인증제도와 본인인증제도가 미흡한 상황에서 규제 완화를 논의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정부가 법으로 사기업의 비즈니스모델을 심의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도 있어 조심스럽다"며 "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부 의견을 경청해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